미디어 작가 백정기의 이번 개인전 ‘Underline : RMP_b 서울 주행 보고’는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자전거를 타고 서울을 한 바퀴 도는 프로젝트이다. 이렇게 얼핏 들으면, 요 근래 대두되고 있는 공공적 의미의 프로젝트나 커뮤니티적 도시미술의 일환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그의 작업은 무엇보다도 미디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대안미디어’적 성향을 지닌다.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인 고안된 자전거(RMP_b)는 ‘탈 수 있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ridable multimedia player)’의 약자로, 미디어에 의해 점점 사라져가는 인간 본연의 감각을 상기시키고자 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자전거의 바퀴와 안장 부분을 나무, 철과 같이 충격흡수율이 아주 낮은 재료로 직접 개조하여, 주행 시 지면의 충격이 고스란히 신체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시장에는 이 불편한데다가 다소 위험하기까지 한 자전거를 타고 주행했던 기록들이 영상, 설치, 리포트, 도면, 지도 등 다양한 형식들로 세부적 감각들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기계적 결함, 신체적 고통, 사람들의 반응, 도시 환경에 대한 분석 등 소소한 신체적 반응에서부터 환경과 신체 사이에서의 견해가 기록돼 있다. 영상의 경우 자전거에 부착된 캠코더로 촬영하여 주행 시의 상황을 작은 흔들림과 소음까지도 현장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21세기의 미디어 작가가 고안한 자전거는 아이러니하게도 18세기에 등장한 초기 자전거의 형태와 유사하다. 기술시대의 초기로 돌아가 기술력을 배제한 미디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술력의 진화로 인해 우리가 망각하고 있는 리얼리티, 신체적 경험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이다. 주행시 바닥 노면의 재질까지도 신체에 고스란히 전달됐던 그 과중한 촉각성은 증강된 리얼리티로, 미디어아트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또한 보편화되고 있는 증강현실에 대한 작가만의 주체적이고도 비판적 입장으로 보인다. ‘b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진동’이었다. 그리고 그 세상은 ‘멀미’로 느껴진다.’(작가노트) 주행 후 작가의 언급에서는 세상을 인식하는 개인의 총체적 실존감과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맥루언의 단언과 같이,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우리의 의식과 신체를 확장된 세계로 매게 시키고 있다. 미디어가 편리하고 신속하게 우리의 의식과 기억의 측면까지도 대체해 나가는 현재에 있어, 작가는 반성적인 태도로 미디어의 본질과 현실과의 접점들을 접근해 보여준다. 현시대의 편리한 미디어가 아닌, 불편한 미디어로서 고안된 자전거(RMP_b)는 변화하는 현대인의 감각 체계에서 삭제된 리얼리티를 재발견하게 한다. 세부적 루트가 흘겨진 글씨로 적힌 지도에서, 작가가 도착한 날 쓴 짧은 문장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치열했던 신체적 고통에 대한 토로일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함축하는 실존적 상황이 그가 계속하여 제안할 대안적 미디어 모델에 더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